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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이 글에는 스포일링이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신 후에 봐주세요!)

 

 

 

 

 

 

 

 

 

 

 

 

고등학교땐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권장도서중에 하나로 알고 한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워낙에 재미도 없고 그 당시에는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 내용에 대해 전혀 감도 안잡혔기 때문에

결국 어딘가에 처박아놓고 잊고 있다가 문득 떠올라서 읽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책이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에는 흡입력이 대단한 녀석인듯 읽기 시작하자마자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여러 사상들을 접하다 보면 누구나 신을 멀리하고 이성의 힘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

이성의 극단에 서서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어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삶의 어려움,무게, 비참함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른다.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는 그러한 가난한 대학생의 신분으로 합리적 사고와 논리를 지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누구나 한번쯤 이 주인공처럼 세상에 대해 난폭하고 거친 생각들을 가져보고 그것의 현실성에 대해 가늠해보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감정의 변화, 생각의변화를 매우 섬세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강박적 성향에 조금은 정신분열증을 시사할 수도 있는 심리의 묘사가 탁월했다.

 

책의 대부분은 결국 주인공의 심리의 변화를 묘사하거나, 주인공의 시각에서 보는 사건의 변화,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대화및 논리력의 싸움을 통해서 이루어져있다.

 

세상을 직접 보지 않고, 그 속에 빠져있지 않고 홀로 서서 생각에만 잠기다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망상에 도달하게 되고, 그 망상에게 잡아먹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선택의 결과, 머리로만, 이성적으로만 다가오던 생각들은 모두 사라지고,

감정과 분위기, 고조되는 흥분과 불안감만이 자리잡기 시작하면 아무리 이성으로 이를 다잡고 이해하려고 해도,

이성으로 표현할 수 없는 모호하고 묘하면서 압도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의 2/3 이상은 바로 그 분위기를 어떻게든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다.

주인공 스스로 느끼는 시선, 경박한 대학생의 시선, 의사의 시선, 평범한 사람의 시선, 예비판사의 시선, 창녀의 시선.

이 서술의 순서가 흥미로왔는데, 굉장히 이성적인 시선에서부터 점차 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뀌었다가

평범한 대중의 시선을 거쳐 이성을 어느정도 갈무리하고 직관과 감성의 촉을 가진 시선을 보여주고는

마지막에는 절대적인 직관과 감성의 시선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우리는 단 하나의 기준에서 다양한 기준이 존재함을 배워간다.

아마도 고등학교 즈음엔가 어렴풋이 두 개 이상의 양립가능한 기준에 대해 느껴왔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그 이상의 양립가능한 다양한 시선들이 있음을 알고 그 속에서 조화를 찾고자 노력하게끔 정리하고 있지만

어떠한 시선들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마음 속 깊이 공감한 후 그 조화를 발견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촉'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분위기'를

이 책으로 하여금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성의 극단에 있던 대학생이 직관의 극단에 있는 창녀의 시선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평화를 찾는 과정.

이성과 직관의 극을 맛본 후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처리하였지만,

무어보다 중요한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은 큰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마음의 혼란, 가치관의 혼란, 대립되는 다양한 생각에서 어디로 나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다양한 가치관을 두루 이해하고 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면 어렴풋이 보이는 새로운 방향이 밝게 느껴진다.

책의 전반에 걸쳐있는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지나 마지막 한겨울에 느껴지는 따스함을 신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수많은 가치관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 원류를 따져보자면 결국 인간 본위의 생각을 따르자는 이성적인 사고와

신의 절대성을 믿고 그 진리를 따르자는 자연의 섭리 또는 종교적인 사고로 나뉠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도구로는 결국 이성적인 사고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에

다양한 학파와 다양한 논리들이 나와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결국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라는 표현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반면에 신의 절대성과 그 진리를 따르는 관점에서는 어떤가.

단어로 정의하려하거나, 문장으로 정의하려하거나, 이야기로 전달하려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에는 '침묵'속에서 마음 속에 갈음하는 그 고요한 분위기에 빠지고 만다.

그 분위기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정말로 "그냥 그 자리에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는 바로 그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신의 절대성과 그 진리는 말로 하지 않아도 법칙을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느껴진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죄'를 저지른 사람이 그 일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안다.

티끝만큼도 안되는 마음이라도 들게 되므로 이미 그 자체로 이미 '벌'은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라스콜니코프'의 죄에 대한 벌은 사실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살인에 대해 생각할 때부터 그의 불안한 마음, 그의 사고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보였으니 말이다.

생각으로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대학생에게 끊임 없이 생각하고 되새기고 괴로워하는 그 자체가 이미 '벌'이 아닐까.

마침내 그가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벌'을 받아들이고자 마음 먹은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오는 평화.

그렇게 그의 '벌'은 끝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아가 나의 성장도 그러한 수많은 고뇌 끝에 평화가 오기를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